페미니즘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에 대한 종교현상학적 해석

cottonracoon 2017. 12. 12. 00:26

-본 포스팅은 수업 중 발표를 했던 내용의 재구성입니다. 발표 주제는 안신의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에 대한 종교현상학적 해석: 정치적 기제에서 종교적 상징으로의 전환'이라는 논문입니다.-



히잡은 '가리다'라는 의미의 아랍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무슬림 여성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착용하는 베일이다. 이는 쿠란 제 24장 31절의 구절에서 근거가 유래되었다.



“그리고 믿는 여성들에게 일러 가로되 그녀들의 시선을 낮추고 순결을 지키며 밖으로 나타내는 것 외에는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아니 되니라. 그리고 가슴을 가리는 머리 수건을 써서 남편과 그녀의 아버지, 남편의 아버지, 그녀의 아들, 남편의 아들, 그녀의 형제, 그녀 형제의 아들, 여성 무슬림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하녀, 성욕을 갖지 못하는 하인 그리고 성에 대한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 외에는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되니라.” -꾸란 제 24장 31절




히잡은 스카프와 같은 천으로 대개는 머리카락과 목덜미, 가슴 정도까지 덮어 가리며 다양한 색과 무늬를 가지고 있다.


히잡의 종류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대다수의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을 착용한다. 머리카락과 목만 가리는 심플한 형태의 스카프가 바로 히잡이다. 차도르의 경우 이란 여성들이 주로 입는다. 눈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 복장인 니캅과 눈까지 모두 덮는 부르카는 비교적 폐쇄적인 이슬람 국가에서 착용하는데, 파키스탄이나 이집트, 아프가니스탄 등이 거기에 속한다.


위의 지도는 히잡을 착용하는 국가를 나타낸 것으로 붉은색 지역은 교육적/정책적으로 히잡에 대한 법적 제한이 있는 곳이고, 노란색 지역은 일반적으로 히잡을 착용하지만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곳, 연두색 지역은 히잡 문화가 사회에 깊게 퍼져있는 곳, 녹색 지역은 법에 의해 의무적으로 히잡을 착용해야 하는 곳이다.(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본 논문에서는 히잡이 '억압'의 상징인지 '저항'의 상징인지에 대해 고찰하며, 이를 다차원적 종교 상징으로서 살펴보고자 한다.



히잡은 이슬람이라는 종교에서 여성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와도 연관이 있다.

무슬림 언행록에서는 "그러므로 이 세상의 유혹과 여성의 매력을 조심하십시오. 이스라엘 자손들이 겪은 첫번째 시련은 바로 여성 때문이었지요."라는 구절이 있어, 여성을 유혹하는 존재로 정의한다고 볼 수있다. 이에 따라 여성이 히잡을 두르게 되는데, 이에 대해선 긍정적인 주장과 부정적인 주장이 공존한다.


부정적인 주장 

정적인 주장 

히잡의 착용 이유: 남자의 성적 욕구 제어

->왜 피해자인 여성이 착용해야하는가? 

 베일 착용은 무슬림 여성의 해방

남성은 착용하지 않는다 

여성이 성적인 상징으로 전락하는 것 방지 

여성의 사회적 고립->교육과 참여의 기회 축소 

온전한 인격체로 거듭날 수 있는 사회적 기회 제공 



부정적인 주장이 존재했던 만큼, 히잡 자체를 벗고자하는 움직임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성의 베일착용은 남녀를 구별하는 이슬람 세계관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고, 따라서 이 베일을 제도적으로 벗기기 위해서는 점진적인 설득의 과정이 필요했다.

터키의 경우, 서구의 현대화를 모델로 삼아 이슬람 역사 최초로 종교와 국가를 분리하는 세속주의를 도입해 남성과 여성의 법적 차별을 사실상 폐기했다. 다만,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히잡을 착용하고 싶은 여성들은 히잡을 금지당했다.

튀니지의 경우 꾸란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여성 해방의 물꼬를 열었고, 이집트에서는 여성 스스로의 힘으로 여성주의 운동을 주도해나갔다.

앞서 한 포스팅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슬람 페미니즘은 이슬람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슬람 페미니즘은 이슬람의 가르침에 내제된 평등의 가르침을 탐색하고, 왜곡된 하디스와 샤리아의 지배에서 탈피하는 것을 기본 골조로 한다.




그러한 사조나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은 여성 차별적 종교라는 인식은 여전히 만연하다.

"외부자의 고백론"은 그러한 인식이 크게 반영된 시각이라고 볼 수 있다.


백석대 여성 선교학자 이정순의 경우 히잡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쏟아낸다.

-히잡은 사막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문화적 고안물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여성의 억압을 위한 한낱 명목상의 이유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동성애, 에이즈, 매춘, 명예살인, 할례악습의 근원으로 파악하는 지나친 일반화와 확대해석을 했으며,

-가계 경제의 부담, 빈부 격차의 심화, 민주주의 발전의 저해, 사회적 갈등의 원인 등 좋지 않은 모든 현상을 끌어왔으며,

-히잡이 도리어 남성의 욕망을 강화하여 근친강간, 근친결혼, 이에 따른 장애아 출산율이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가택연금을 정당화하고 여성 비하적인 정치수단이라고까지 했으나,


이는 히잡이 가진 활동성과 안정성은 간과한 것이다. 요컨대 극단적인 호교론적 비판인 것이다.


이화여대 명예교수이자 한국 이슬람 연구소의 창립자인 전재옥은 위와는 조금 다른 시각을 내놓는다.

-여성의 베일은 '정숙하고 예의바른 여인상'을 표상하며

-여성해방은 이슬람 사회구조의 근본으로 여겨지는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이처럼 외부자의 고백론적 시각은 이슬람포비아적 시선을 내재하고 있으나, 이해하려는 관점 또한 존재하기는 한다.



"내부자의 환원론"과 같은 경우 이슬람 고유의 문화는 아니지만 종교적으로 깊숙이 받아들인 히잡을 통해 저항의 의미를 가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히잡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았던 남부 레바논은 사실 히잡에도 불구하고 혹은 히잡 때문에 해방되었다. 무슬림 여성들은 그들의 문화와 문명을 지켰다. 히잡은 서구에 대항하는 일종의 무기였다.[중략]히잡은 여성의 신앙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여성의 절개를 상징한다. 히잡은 저항을 위한 무기이며, 지하드(성스러운 전쟁)와 용감한 대항을 뜻한다. 적들은 히잡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했고 ‘알라는 위대하시다’(알라 아크바르)라는 전장에서의 외침만큼 히잡을 두려워했다.” (Hijab,1988,55)

“알제리를 식민지 로 삼은 프랑스정부는 무슬림 여성의 히잡을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규정하고 그러한 상황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한 이슬람을 ‘야만적’이며 전근대적인 사상체계로 평가했다.[중략] 알제리 여성들은 히잡을 착용하여 비밀서류와 무기를 옷 안에 숨겨 운반함으로써 히잡은 독립운동을 위한 위장술과 투쟁의

한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조희선,2005,179-181)



위에 나온 것처럼 레바논/알제리 등에서는 히잡을 투쟁의 방식으로 이용했다.


다만 사우디아라비아처럼 히잡 착용이 강요되는 상황에서는 히잡 착용이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상징적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는 점 역시 짚고 넘어갔다.



위 두 입장을 정리하자면, 외부자의 입장에서 히잡은 여성의 삶을 '억압'하는 상징으로 이해되는 면이 부각되고, 내부자의 입장에서는 히잡이 부패한 정치와 불의한 사회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으로 이해되는 면이 크다. 두 가지 해석 모두 신학적 혹은 정치적 차원으로만 해석하여 히잡의 의미를 축소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여구자는 양자를 극복하는 종교적 상징으로서 히잡의 새로운 의미에 대해 살펴본다.


히잡은 중층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한 가지 의미만 가진 것이 아니다. 정치적 기제로서 레지스탕스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무슬림 여성에게 물리적 의상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베일을 착용하는 여성의 다양한 삶 전체를 반영한다. 대신에 개별적인 신앙적 결단과 종교적 상징의 해석에 따라서 무슬림 여성들이 보다 다양한 의미,때로는 모순되는 의미들을 함축하며 표상하는 방향으로 히잡착용을 전개하고 있다.



“나는 이 옷을 입을 때 편안하고 보다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나는 이슬람 의상을 입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의 말씀 [꾸란]에서 이해한 바로는 정숙함이 요구되는 것이므로 베일을 착용하는 것은 옷을 입는 방식이라기보다는 행동의 방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히잡 착용에 대한 의견>



또한, 꾸란에서는 구체적으로 히잡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죄를 범한 후에 수치를 느껴 의상을 착용하게 된 인류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히잡을 의상의 일부로 간주한다면 수치스러운 부분을 가리고 꾸미는 가시적 의상과, 신을 향한 절대 순종을 의미하는 비가시적 의상을 구별할 필요에 대해 연구자는 지적하며 히잡이 단순히 물리적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를 담고있음에 대해 환기시킨다.



위에서 살펴 본 언행록이 여성의 본성과 능력을 차별적이며 종속적으로 설명 하고 있다면, 아래의 꾸란 구절은 인간본성의 측면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일하다고 언급함으로써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인간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인정한다.


“사람들이여 주님을 공경하라. 한 몸에서 너희를 창조하사 그로부터 배우자를 두어 그로 하여금 남녀가 풍성히 번성토록 하였노라. 너희가 너희 권리를 요구하매 하나 님을 공경하고 또 너희를 낳아준 태아를 공경하라.

실로 하나님은 너희를 지켜보시고 계시니라”

(꾸란 4:1)



결론적으로, 다차원적인 종교상징으로서 히잡을 쓰는 것은 자유와 평화를 의미하는 신앙의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본 논문의 결론은 그러했다.

다만 개인적으로 가진 의문이 있다. 그것은 이슬람 페미니즘 때 제시된 의문과 같다. '이슬람'과 '페미니즘'은 공존할 수 있는 것인가?

세상에 존재하는 종교는 대부분 여성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하며 남성에게 권력을 쥐어준다. 그것은 비단 이슬람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며, 여성 사제가 나오지 않는 가톨릭 등 역시 맥락을 같이 한다. 과연 종교와 페미니즘은 공존할 수 있는가?

논문에서는 히잡이 신앙의 선택임을 시사했으나, 여전히 남성에겐 없는 그러한 신앙의 선택을 여성은 해야한다는 사실에 있어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