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곳 낯설게 보기 - 명동 성당
- 본 포스팅은 '공간과 문화' 수업 시간에 현지조사 나갔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인류학에선 늘 '외계인의 시각'을 강조한다. 이에 대하여 나는 익숙하면 쉽게 놓치게 되는 것에 집중해야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나는 이미 사회에 길들여진 사람이고, 따라서 완전히 나를 분리하여 외계인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명동 성당은 내게 무척 익숙한 공간이다. 내가 가진 명동 성당에 대한 가장 첫 기억은 초등학생 때이다. 본당과 본당 옆의 나무, 사제관, 꼬스트홀, 가톨릭 회관, 교육관 등등... 모두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다. 현재는 공사를 거쳐 보다 탁 트인 개방적인 입구의 형태로 변화하고 여러가지 부속 시설도 늘어났지만, 여전히 내게 명동 성당은 명동 성당이다. 그건 아마도 위엄있는 본당이 변화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읽은 책에서 쾰른 성당의 첨탑 꼭대기를 올려다보면 구름을 따라 첨탑이 흔들리는 거 같다고 묘사한 문장이 있었다. 그 문장이 인상깊었던 어린 날의 나는 명동 성당이 그 책의 그림에 나온 성당과 비슷함을 떠올리고 그것을 따라했다. 정말이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명동 성당의 구석구석에는 그런 기억이 남아있다. 그래서 내게 명동 성당은 친숙하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장소다.
그러나 공간 인류학적으로 보는 명동 성당은 조금 낯설다.
국내에선 최초의 성당인 명동 성당에는, 초기 천주교의 유입을 거부하는 과정에 있었던 여러 비극의 흔적이 남아있다. 지하성당의 유해 등이 그러한 흔적 중 하나이다. 그런 역사적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명동 성당은 의미가 깊은 곳이다. 또한 근현대 정치사 면에서도 명동 성당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민주화 운동의 거점 중 하나로서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관심없니 지나쳤던 것들, 예컨대 중간 문에 새겨진 희생의 이야기나 스테인드 글라스, 제대 양쪽 날개 부분에 있는 조각상 등이 다른 시각에서는 의미가 부여되고 서사를 가지게 되며 이런 과정에서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 된다. '주교좌' 성당에만 있는 닫집이나 중앙에 있는 감실 불빛은 심지어 그 특이성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보게 된다. 기존에는 별 의미를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들이, 혹은 당연하게 여기고 지나갔던 것들이 이 관점에선 모두 의문투성이가 되고 이는 꽤 재밌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과정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문화는 정체되면 사그러들고 죽기 마련이다. 또한 기억이 마모되면 기존의 의미는 변화될 수 있다. 명동성당을 낯설게 보는 과정에서 명동성당에 대한 의미는 강화되고, 변화 이전은 기억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지만, 물론 이 이상의 의미 역시 있으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