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페미니즘
-본 포스팅의 내용은 <이슬람 문화론>수업에서 했던 개인연구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먼저 페미니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약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페미니즘’이란 용어의 시작과 함께 관련 운동이 활발해진 것은 19세기이다.
<위베르틴 오클레르>
최초의 여성참정권 운동가이자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하기 시작한 최초의 여성인 위베르틴 오클레르의 경우 직접 창간한 [여성시민]이라는 잡지에서 남성의 지배를 비판하고 프랑스 혁명이 약속한 여성의 권리와 해방을 주장했다. 이처럼, 19세기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참정권 운동과 맥락을 같이 한다.
물론, 페미니즘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참정권을 얻은 후에는 여전히 불평등한 여성 권리, 혹은 여성 외 소수자들의 권리와 엮이면서 여러 의미와 정의가 부여되고 변화한다.
<말라크 히프니 나시프의 '알 니사이야'>
이슬람권에 페미니즘이 확산된 것은 19세기 후반이며, 실질적으로 공공영역에 여성이 등장하고 여성운동이 조직화된 것은 20세기 초 무렵이다. 이는 서구권과 큰 차이를 가지지 않는다. 초기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니사이야라고 번역되어 사용되었는데, 20세기 초반 이집트 사회의 대표적 여성운동 선구자인 말라크 히프니 나시프의 알 니사이야라는 에세이집에서도 그 단어가 등장한다. 그녀는 이 저서에서 여성 권익 증진을 위해서 서구적 가치관을 과감히 받아들이고 베일, 결혼, 교육 등의 문제에서 개혁을 추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슬람 페미니스트들은 쿠란의 여성 혐오적 해석과 남성 주의적 하디스 구성을 비판하고 베일과 성의 분리 등 무슬림 여성에게 부과되었던 성차별적 규제들을 공격했다. 이와 같은 주장을 한 초창기 이슬람권 페미니스트로는 타헤레 쿠라트올 아이네, 나지라 진 알딘, 파티마 알리야 하님, 말라크 히프니 나시프, 후다 샤으라위 등이 있다. 파티마 알리야 하님은 오스만 문단에서 최초로 중요한 활동을 한 여성 작가이자, 최초로 문학 작품을 통해 여성 문제를 논의한 작가다. 또한 후다 샤으라위는 이집트 여성주의자 연맹의 설립자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공공장소에서 베일을 벗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슬람 페미니즘이란
이슬람 페미니즘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고, 1990년대에 이르러 이론적 틀이 확고해졌다. 1970년대 이후 등장한 원리주의 정치집단, 혹은 보수적 무슬림으로부터 페미니스트들은 ‘서구적 문화에 오염된 탈선자’, ‘세속적 가치를 추구하는 자’, ‘반 이슬람주의자’ 등의 비난, 그리고 비판을 받으며 위기를 맞았으나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면서 성장했다. 이슬람 페미니즘의 목적은 정치, 사회, 경제적 면에서 성 평등을 추구한다는 점에 있어서 기존의 페미니즘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슬람 페미니즘은 한 가지 차이점을 가진다.
이슬람 페미니즘은 성평등의 이상을 실현하는 영역 설정에 있어서 다른 입장을 가졌다. 기존 페미니즘-이슬람 페미니즘에서는 소위 세속주의 페미니즘이라고 부르는-은 국가를 인종, 종교, 성별에 관계없이 동등한 권리를 지닌 시민으로 구성된 집합체로 보았고, 따라서 교육, 노동, 정치 등 공공분야에서 여성 시민이 남성 시민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종교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다소 나이브한 면이 있었다. 일상과 종교가 밀접하게 엮여있는 이슬람권 문화의 특성상, 이는 평등을 추구하는 데에 있어서 상당한 모순을 가져왔으며, 이에 따라 이슬람 페미니즘은 공공역역은 물론 가정과 같은 사적영역에서도 평등의 이상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선 전통적 가부장 주의를 해체하여야 하며, 쿠란에 나타난 인류 또는 양성 평등의 원칙을 재발견하고 이를 사회와 가정 모두에서 동시에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슬람 페미니즘의 또다른 특징은 위의 생각에서부터 기인한 것이다. 바로, 세속주의 페미니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꾸란과 하디스 등의 종교 텍스트를 여성의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슬람 페미니스트들은 꾸란에 언급된 영혼, 짝, 보호자 등과 같은 낱말의 개념 자체를 새롭게 해석하여 꾸란은 원칙적으로 남녀평등의 원칙을 지지하고 가부장주의를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존 꾸란은 납스란 단어를 아담으로 해석하여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실질적으로 꾸란에선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지 않으며 하나의 영혼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다. 둘을 동등한 짝으로 두는 것은 그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며, 보호자라는 단어 역시 그러한 사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고대 가부장주의적 사고관을 반영한 꾸란 외 2차 종교 텍스트, 하디스, 타프시르 등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하디스는 이슬람 예언자의 언행록인데, 이 하디스에는 코란의 메시지나 역사적 사실, 상식에서 벗어나는 내용이 담겨있기도 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낳아 여성의 지위를 낮추는 데에 일조하였다. 그러나 이 내용들은 꾸란을 기반으로 하지 않곤 한다. 예컨대, 여성은 피트나, 즉 유혹이며 무질서, 내란이다, 라는 내용은 위에서 언급했던 남녀 둘을 동등한 짝으로 두는 것에 대해 반하는 말이며, 해당 문장이 적힌 하디스가 기록될 당시 타문화의 여성혐오적 시각이 유입되고, 중앙집권이 강화됨으로써 가부장제 역시 강화되던 시기이다. 즉, 문화적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부 바크라가 전한 하디스에서는 여성이 국가의 지도자가 될 경우 민족이 멸망한다는 내용이 담겨져있는데, 여성의 정치 참여를 막는 정치적 근거로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코란 27장에서는 군림하는 여성, 지혜로운 여인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우마르 아흐마드 우스마니는 이 하디스가 위조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알리고 있다. 이처럼 하디스는 위조되었을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꾸란을 근거로 하지 않은 경우 또한 있다. 이슬람 페미니스트들은 하디스나 타프시르 등의 권위를 해체하는 것이 꾸란을 바로 읽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꾸란에 여성혐오적 텍스트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를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일부 다처제나 1명의 남성 증인은 2명의 여성 증인과 같다고 한 것이 그 예시이다.
이슬람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여러 갈래 중 하나로 볼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의 성격을 띄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무슬림과 여성의 상황을 총체적으로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 페미니즘은 어떤 면에서 그 명칭 자체가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 페미니즘이라고 칭함으로써 이슬람 외, 즉, 종교적이지 않은 영역에서의 평등은 간과되곤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슬람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학자 대부분은 서구권에서 활약하고 있기 때문에 이슬람권 일반 독자들에게 어필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이슬람 페미니즘은 학술적 활동에 다소 치중해있어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에는 큰 힘을 가지고 있지는 못한다. 또한 이슬람 페미니즘은 주로 양성평등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제 3의 성별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페미니즘은 유의미한 사조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 페미니즘은 다른 페미니즘 사조와 마찬가지로 무슬림 여성이 받아오던 차별에 반박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었으며, 반이슬람주의자라는 오명을 쓰게 했던 초기 페미니즘과 다른 노선을 걷게 해주어 무슬림 여성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한 계속된 논의를 통해 성장하고 있는 이슬람 페미니즘은 명칭과 달리 단순히 이슬람 국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무슬림 여성은 오리엔탈리즘 속에서 더욱 강화되는 차별을 받아온 상황에 노출되었는데, 무슬림 여성의 처우에 대한 비난은 비이슬람권 여성들이 노출된 성차별적 환경, 예컨대 성적-문화적 억압과 비인격적 대우, 성적 이중 기준 등을 정당화하고 은폐하도록 도왔다. 이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이슬람 페미니즘은 이슬람 문화에 특화된 페미니즘이라는 데에 의의를 가질 뿐 아니라, 단순히 이슬람 사회에서 그치지 않고 무슬림 여성들의 권리를 증진시킴으로써 비이슬람권 여성들의 권리 또한 증진시킨다고 볼 수 있다.
관련 추천 자료
하이다 모기시 <이슬람과 페미니즘>, 프로네시스 출판사
조희선. (2013). 하디스(Hadith)를 통해 본 무슬림 여성. 한국이슬람학회 논총 23권 2호, 57-87.
김정명. (2015). 이슬람 페미니즘과 여성 시각에서 새로운 종교 텍스트 읽기. 한국중동학회논총 제36권 제 1호, 71-101.